대학을 졸업 한지도 35년이 되었다.
대학 재학 4년 시절 동안 함께 했었던 동기들을 만나 1박2일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벌써 이승을 하직한 친구도 있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계속적으로 모임에 참석치 못하는 동기도 있지만, 7-8명은 일년에 두 차례씩 모임을 정기적으로 계속 가지고 있다.
모이면 즐겁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모두들 한잔 술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즐거움은 배가 된다.
지난 토요일 안동댐 아래쪽의 민속박물관 앞에서 만나 안동소주를 곁들인 안동간고등어 정식으로 맛난 점심식사를 하고 봉정사 구경에 나섰다.
봉정사 입구의 서후면에서는 국화차 제조를 위한 대단위 국화재배지가 있어서 관광객을 불러 모았고, 국화 향기가 마을 입구부터 가득했었다.
국보 제311호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이 건물은 봉정사의 중심 건물로, 조선 초기의 건물로 추정된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건물이다. 건물 앞에는 축대를 높이 쌓고 그 윗면에는 좁은 마루를 깔고 난간을 세웠으며 내부도 마루를 깔았다. 중앙 뒷면에 높은 기둥 2개를 세워 그것에 의지해 불단(佛壇)을 만들었다.
기둥 사이의 창문이나 벽체 등 일부가 건립된 이 후 변경되었으나 공포의 구성에서 힘 있고 단순한 수법은 초기의 다포(多包)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내부의 단청(丹靑)은 건립 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고려시대적 요소를 지니고 있어 건물과 함께 중요한 회화자료로 주목되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퇴락하여 2000년에 해체․보수하였다.(안내판 내용)
안내판에 나와 있는 공포(空包)라는 용어는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목재의 구조적 짜임을 말하는 것이다.
힘을 여러 방향으로 분산시켜 건축물을 잘 지탱해 줄 수 있을뿐더러 중간에 비어있는 공간이 있어 지진 때 그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구조물이다.
국내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대웅전 옆의 극락전은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전혀 아니었지만, 보수 해체공사 중에 나타난 기록물에 의해 확인되었다고 한다.
보수공사가 잘못된 것인가?
100원짜리, 500원짜리 동전을 붙이고 있는 부처님이 극락전 옆에 위치해 있다.
우리나라가 참 잘 살고 있는 나라라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우리나라가 어렵게 살았던 시기라면 이 동전들이 이렇게 놓여져 있을 수 있을까?
안동시내로 돌아와 안동댐 아래에 조성되어 있는 월영교를 건너 본다.
목재다리라는 안내판이 붙어있지만, 교각은 철근콘크리트와 철재 빔으로 되어있고, 상판만 목재로 되어있다.
이름은 참 멋지다.
월영교(月影橋)
그 전에 왔을 때는 안전에 문제가 있어 다닐 수 없었는데 그간에 보수공사가 이루어졌던 모양이다.
월영교를 건너 높은 언덕으로 올랐더니 이곳에서도 경주에서와 비슷한 석빙고를 만날 수 있었다.
안동 석빙고
보물제305호. 안동시 성곡동
이 석빙고는 원래 예안면 소재지에서 청량산 족으로 약 1.2㎞되는 산기슭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인해 이곳으로 옮겨오게 되었다. 이 석빙고는 붕토가 완전하기 때문에 외부의 모양은 큼직한 고분처럼 보인다.
예안군 읍지인『선성지(宣城誌)에는 현감 이매신(李梅臣)이 조선 영조(英祖) 13년(1737)에 부임하여 3년간 재임기간중 사재(私財)를 털어 석빙고를 축조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석빙고는 낙동강에서 많이 잡히는 은어를 국왕에게 진상하기 위해 축조되었다고 한다.
안으로는 계단이 있고, 중앙에는 배수구가 있어 외부로 물이 빠지게 되어있다. 빙실바닥은 편평한 장방형의 구조이다. 4개의 홍예(虹霓)가 천장을 지탱하며, 3곳에 환기구멍이 있다.(안내판 내용)
선성형 객사(宣城縣 客舍)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
안동시 성곡동
이 건물은 조선 숙종(肅宗) 38년(1712)에 예안현감 김성유(金聖遊)가 개수한 ‘일(一)’자형 객사이다. 이 객사는 조선시대 객사(客舍)의 전형적인 모습을 각추고 있다. 객사의 중앙건물에는 궐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하여 절을 하였으며, 양쪽에 있는 건물에는 사신이나 귀한 손님의 숙소로 제공되었다.
객사중앙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건물의 솟음이 지붕에서 또렷이 나타난다. 양족에 있는 객사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모두 6칸 대청에 1칸씩의 툇마루를 갖추고 있다. 안동댐 건설로 1976년에 도산면 서부리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안내판 내용)
다리를 다시 건너오니 완전히 어둠이 내리고 월영교에 불이 밝혀져 운치를 더한다.
건너편 객사에 불이 밝혀져 환하게 보인다.
안동찜닭이 유명하다 하여 주문하였더니 병아리같은 고기 몇 점이 들어간 맵기만 한 허술한 음식이었다.
음식 타박을 별로 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이건 좀 타박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이튿날 순대국밥으로 아침을 든든히 채우고 이르게 봉화 청량산을 향했다.
지난 가을 이맘때쯤 그곳을 들렀다가 너무 사람이 많고 복잡하여 발길을 돌린 경험이 있어 일찍 시간을 앞당겨 출발했다.
덕분에 주차장 입구에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걸어야 하는 발품을 덜 수 있게 되었다.
왕복 3시간 코스로 높은 하늘다리를 건너게 된다.
단풍도 절정이었고, 하늘도 맑고 깨끗하여 산행하기에는 좋은 날씨였다.
청량사 장독대에 쌓여진 기왓장이 벌집 마냥 보였다.
청량사 바로 아래쪽에 있는 쉼터에는 약차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다.
달마대사 그림을 그리는 장인으로 지정되어 있는 분이 운영하는 곳이다.
마신 찻잔을 깨끗이 씻어 엎어두면 된다.
한약냄새 풍기는 뜨거운 약차 한잔에 산을 오르는 피로가 가신다.
옛 물건들도 많이 모아두었고, 몇 가지 기념품을 판매하는 수익으로 운영하는가 보다.
붉은 단풍잎 사이로 보이는 요사체의 추녀 끝이 숨어 사는 스님의 모습 같아 보인다.
절 옆 벼랑 끝 같은 곳에 산신각이 자리해 있다.
대부분 절에 가면 제일 뒤쪽에 산신각이 위치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마 무슨 연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멋진 봉우리들이 당당한 모습으로 등산객을 맞이한다.
한 고개를 올라섰다.
오늘의 목표인 하늘다리까지는 500m 거리다.
젊은이들이 이 높은 곳까지 아이스케이크를 지고 와서 1500원에 팔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씩 사먹는다.
내 한 몸 올라오기도 어려운데 저 많은 무거운 것을 이곳까지 짊어지고 와서 파는걸 보니 역시 젊다는 것이 큰 재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늘다리다.
참 기술도 좋다. 이 높은 곳에, 이렇게 긴 다리를 허공에 붙들어 매어둘 수 있다니...
우리나라 산들은 참 예쁘다.
그렇게 험악한 모습도 아니고 어린아이들도 오를 수 있을 정도로 다니기 좋은 산들이다.
하늘다리가 전국적으로 이름이 난건지 명호천 옆으로 난 길에 주차되어 있는 장사진의 버스 번호판들이 모두 먼 곳에서 온 것을 알려준다.
부근 식당은 만원이 되어 이용할 수 없을 정도다.
할 수 없이 도산면까지 나와서 매운탕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밖에서 보기에는 허름한 집이었는데, 보기보다는 음식이 깔끔하고 맛있다.
이 집 주인은 아이디어 맨인가?
식탁의 다리를 옛 재봉틀 발틀을 떼어내어 활용하고 있다.
운전에 부담이 없는 사람들은 생막걸리로 모임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준비해준 회장, 차량봉사해준 친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참 기분좋은 시간들이었다. 몸은 피곤해 있지만 마음은 날 듯이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