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 기간 중이라 오전 중에 몇 과목 시험을 진행하고 점심식사를
끝내고는 학생들 일찍 귀가시키고, 오후에는 선생님들이 오래간만의 여유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제는 1학년 팀들이 단합대회 겸 협의회를 가진 후 내연산 산행을 했었던 모양이다.
내연산 보경사 들어가는 길목의 식당에서 자랑스러이 내어두고 판매하는 유명한 약주 ‘벌떡주’를 선물로 사 가지고 왔다.
나이든 선생님들이 가장 나이 어린 처녀선생님에게 선물 전달을 시킨 모양이다.
고맙다고 잘 쓰마하고 받아두었는데 알고 보니 이 유명한 벌떡주 였었네.
이 젊은 처녀선생님은 선물의 내용이 뭔지나 알고 있었을까?
어제는 또 어떤 선생님이 자기들이 교장의 하는 일에 잘 협조하지 않아 교장선생님이 힘이 없어 보인다면서 손수 만든 무화과 잼과 쵸코렛을 가지고 오더니만,
교장이 선생님들 눈에는 무척 힘이 없어 보인 모양이다.
사실 금년도 신학기 들어서는 나름대로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무리하게 지시도 하고해서 악명(?)을 좀 떨치기도 했었다.
한 학기가 지나고 2학기도 이제 두 달째 들어서서 보니 처음 변화 목표량의 95%는 달성한 셈이었다.
이제쯤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시스템이 자리를 잡은 셈이니 교장은 뒤에 앉아서 궤도 이탈만 방지하면 되는 셈이다.
아침에 약간 일찍 출근해서 앞뒷문을 모두 활짝 열어젖혀 환기를 시키고는 프림이 들지 않은 커피 한잔과 그 날 기분에 따라 홍차나 녹차 한잔씩을 추가하고는 책상에 앉아 몇 종류의 책을 읽는다.
어제는 마이클 샌덜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세 번째 완독했다.
두 번을 읽어도 확실히 잡히는 게 없어서 세 번째 들어서서는 내용을 요약 정리하면서 읽었다.
그 두꺼운 책의 모든 내용의 뿌리가 여기에 있었다.
이젠 장하준 교수가 지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지난번 읽던 뒷부분부터 시작해서 읽기 시작했다.
우리 한국 사람이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 교수로 있으면서 영어로 쓴 글을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이순희라는 사람이 번역한 책이다.
희한하다.
한국 사람이 쓰도 영어로 써진 글이라 번역해 둔 글을 읽으면 어딘가 어색한 부분들이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장하준 교수는 우리말로 다시 쓸 수는 없을까하고 생각도 해 본다.
선진국들의 자유무역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읽으면서 미국과 FTA협상 국회비준을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의 선에 머무르고 있을까하고 생각해 본다.
선진국들이 자기들은 보호무역으로 산업을 발전시켜두고 후진국들이 따라 오려고 하니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꼴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올라가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개방이 필요하다고 하니 우리 나라의 수준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런 책을 읽다가 집중이 떨어진다 싶으면 조용헌의 칼럼을 가볍게 읽고 일어서면 거의 일과가 시작되는 시간이 된다.
이야기가 빗나갔지만,
교장의 이런 책 읽는 모습을 우리 학생들에게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등교하는 학생들이 복도를 지나가면서 활짝 문 열린 교장실 안에 교장의 책 읽는 모습은 학생들에게 무언의 교육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 자신도 배움의 즐거움을 다시 느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교장의 모습에서 우리 선생님들은 그 꼬장꼬장하던 교장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던가?
왜 힘이 없어 보인다고 할까?
가만두어도 잘 돌아가는 학교에 교장이 무슨 잔소리 할 일이 있을까.
벌떡주 먹고 벌떡 일어서서 막 돌아다니기를 바라는가?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