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연금이 처음 생겨날 때
재산이 많은 노인에게는 지급되지 않는 연금을 받기 위해서 내 명의를 빌려 예금을 숨겨놓으려 했던 이웃의 부자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암 판정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그 암이 급속하게 퍼져 손 쓸 새도 없이 며칠 만에 의식을 잃었고 이어 사나흘 후 돌아가시게 되었다.
같이 기거하는 가족들이 없었던 탓에 이웃사람들이 보살펴드리다가 의식을 잃은 후에야 멀리 사는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던 모양이었다.
아마 가족관계도 복잡했었고, 서로 간에 잘 연락도 않고 사셨던 것 같았다.
연락을 받고 모여든 친척들은 임종을 목전에 둔 할머니의 안위보다는 할머니가 남겨놓고 가게 되는 많은 재산에 더 큰 관심을 보였던 것 같다.
이웃을 통해서 듣게 되는 이야기라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서로 간에 재산문제 때문에 갈등이 있었던 것 같았다.
앞서가신 영감님으로부터 물려받으신 재산도 상당했고, 평소 자기 자신의 생활에서도 극히 알뜰하게 사신 분이시라 모아둔 재산도 상당했던 모양이다.
‘호박씨 까서 한 입에 털어 넣는다.’는 옛말처럼 할머니가 그렇게 아끼고 절약하며 모아 놓았던 재산은 재수 좋은 어떤 후손의 입에 한꺼번에 털려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었다면 살아생전에 어려운 이웃에게 좋은 일도 많이 하셨을 것인데 아마 이렇게 한꺼번에 훌훌 벗어던지고 가실 줄은 몰랐었겠지.
신문이나 다른 언론 매체를 통해서 알게 되는 훈훈한 미담 중에 유독 혼자 어렵게 사시던 할머니가 큰 돈을 장학금으로 쾌척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접할 수 있었는데, 이 할머니도 조금만 앞을 생각하셨다면 그런 미담의 주인공이 되실 수 있었지 않을까 안타깝게 생각해 본다.
이것과는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그 자식에게는 독(毒)과 같다는 것을 우리들은 평소에 잘 몰랐을까?
자식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준다 해도 물려받는 자식의 입장에서는 고마울 게 하나도 없다.
어차피 자기에게로 오게 되어 있는 재산이라는 평소의 생각이 있었다면 말이다.
경우에 따라서 자식이 여럿이라면 아무리 많은 재산을 물려받는다 해도 자식들의 입장에서는 항상 불만이 있기 마련이다.
물려받는 재산의 과다(過多)가 문제가 아니라 다른 형제보다 어떠냐 하는 상대적인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공평하게 물려주었다 해도 장남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조상 제사 다 모셔야하고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왜 동생들과 같이 주느냐고 불만일 것이고,
장남에게 좀더 많은 재산을 물려준다면 그 동생들의 불만이 어디가고 없으랴.
우리나라 세법(稅法)으로 상속세를 낼 정도도 되지 못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우습지만, 우리 집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자라왔기 때문에 아예 부모 재산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물려줄 재산도 별로 없을뿐더러 조금 있다 해도 ‘나 죽고 나면 이 모든 재산은 불우이웃돕기기금에 다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기 때문에 의례히 그렇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평소에도 불우시설이나 기관에 정기적으로 기금을 보내는 사실을 알고 있고, 부모의 이야기가 허튼 말이 아니구나 하는 의식이 들어있다고 보아 ‘부모님 재산은 내 것이 아니다.’라고 그렇게 말하는 자식들의 생각을 믿고 있다.
여기에 조금만 허점을 보인다면 사람의 욕심이 발동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겠지.
그 허점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부모가 가지는 자식에 대한 애련한 생각을 끊어버리려 노력하고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자기 자식들로부터 ‘존경한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있으랴 마는 그래도 결혼해서 출가한 딸아이가 물려받은 재산 없이도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말을 해 줄 수 있으니 내 생각이 그렇게 잘못된 것은 아니리라 생각하고 싶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지나간 세월이 참 어제 같은데 벌써 머리에 흰 가루 뿌린 듯 나이 들어가는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저 세상 가는데 순서 있겠냐마는 그래도 나이순으로 간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남아 있을까?
나는 손 털고 저 세상 갈 때, 이런 문제로 후회하지는 않을까?
아무도 자신 있게 말 할 수 없겠지만, 떳떳하고 당당하게 손 털 수 있도록,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