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글쓰기가 싫어져 카페도, 블러그도 팽개쳐두고 살았었다.
내부에너지가 소진된 기분이라고 할까,
밤 시간 산책 때에 자주 구상하던 글들도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그냥 귀찮아지기만 했었다.
최근 들어 포항시 승격 60주년 기념으로 실시하는 연극제를 관람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평소 북부해수욕장 방파제로 걷던 것을, 포항해맞이공원으로 방향을 바꾸면 약간 걷는 거리가 늘어날 뿐이니 슬슬 걸어가서 가족들과 함께 연극을 관람하기로 했다.
우리가 가던 첫날은 해맞이공원 안에도 해맞이극장과 달맞이극장이 따로 있는 것을 모르고 햄릿을 관람하려고 갔다가 달맞이극장에서 하는 블랙코미디를 보게 되었다.
가난한 조각가가 새로 사귄 약혼녀와 대령출신의 엄격한 그녀의 아버지, 이웃에 사는 독신 여자, 동성애 상대의 부유한 독신남자, 그 동안 사귀어오던 여자, 전기수리공, 조각품을 구입하려는 귀머거리 백만장자가 정전(停電)된 상태에서 보여주는 코미디.
정전된 상태를 밝게 하고, 밝은 상태를 어둡게 보여주는 연극기법을 뭐라고 하던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편한대로, 자기 입장대로 생각하며 살게 된다는 의미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다음날은 해맞이극장에서 우리 고전작품으로 각색된 로미오와 쥴리엣을 보게 되었다.
시작시간에 조금 늦어진 탓에 마당놀이처럼 펼쳐진 무대를 보고 오늘도 잘못 찾아온 건가 생각했었는데, 안내하는 사람들이 바로 찾아온 것이라 알려준다.
오호츠크해 고기압으로 인해 동해안 지역은 덥지 않은 여름을 보내고 있는 덕분인지 관람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포항이 예부터 문화방면에는 취약하다는 것이 요즈음 들어서는 무색해 졌으리라 생각된다.
어제는 포항예술문화회관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가 ‘형산강아 말해다오’라는 포항시의 근대역사를 연극으로 만든 작품을 보고 걸어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새로 조성된 해도공원에서 아마츄어 극단의 연주도 듣고, 금속조각품도 구경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니 거의 한 시간을 걸었던 셈이다.
갈 때의 택시비를 돌아올 때는 걸어서 왔으니 택시비 번 셈이다.
막걸리 한 병에 막둥이 과자를 사와서는 시원한 샤워 후에 부자간에 마주앉아 간소한 파티를 하는 재미도 솔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