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예식장 심부름

회형 2009. 5. 6. 14:23

집수리로 인해 엉망이 된 모습으로 중간에 일을 그만두고 아는 사람 잔치에 축하해 주러 갈 형편은 못되고, 할 수 없이 막둥이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평소 집 가까운 학교에 걸어서 다니던 아이여서 자주 다니던 치과병원이나 몇몇 곳을 제외하면 시내 지리를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몇 번의 시내버스 이용해야 하는지 또 어디에서 내려 어디로 걸어가야 하는지를 세세히 알려주고, 예식장에 찾아가 혼주에게 잘 인사하고 아버지 대신 왔음을 잘 말씀드리라 하면서 축의금 봉투를 넣어 주었다.

하기 싫은 일이라면서 가능하면 뒷 꽁무니를 빼려는 아이를 잘 이해시켜 보냈다.

공사를 하면서도 잘 가고 있는지 걱정이 되었지만, 두어 시간 후에 돌아온 아이 말로는 처음부터 시내버스를 잘 못 타서 가다가 되돌아 왔었고, 예식장에 가서도 1층에 종합 안내판을 찾을 수도 없어 4층까지 각 층을 모두 두 번씩이나 확인해도 심부름 받은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혼주의 성함이 작은 글씨로, 신랑 신부의 이름은 큰 글씨로 씌어진 것에 대한 착각이었다는 것이다.

어렵게 혼주를 찾아 인사를 전하고 축의금을 접수한 후 받아 쥔 식권으로 식당부터 찾았는데 좋아하는 음식을 싹쓸이 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로 어린 마음의 불안하고 어려웠던 것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제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도 만나 인사드렸고, 이젠 이런 심부름은 잘 하겠다고 큰소리친다.

큰 공부를 했으리라.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만 공부인가.

이런 공부도 큰 공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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