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119 구급차를 이용하다.

회형 2007. 9. 27. 15:43

난생 처음 119 구급차를 이용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참 어처구니 없는 작은 실수가 큰 상처를 내게된 이야기를 정리해 보아야 겠다.

 

추석을 잘 보냈다.

형제들과 그에 딸린 아이들, 또 그 밑에 딸린 아이들

평소 조용하던 집안이 들썩거리고, 밖에 있는 떡순이가 영문도 모른 채 왕왕 짖어대어 이웃보기 미안스러울 지경이었다.

평소 갈무리 해 두었던 고급양주를 풀어내고 기분 좋게 시작했으나 한 병으로는 턱에도 차지 않는 부족함이었다.

북부해수욕장으로 나와서는 소주, 맥주 등 바다의 시원한 바람을 안주삼아 정담을 나누고, 그동안의 밀린 이야기들로 흥겨운 시간을 보냈었다.

역시 명절은 좋은 것이여!


추석 차례도 잘 지내고, 하양에 있는 조상 산소 성묘도 모두 잘 마치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명절 마무리를 했었다.


이튿날

미루어 두었던 난에 물주기 작업을 조심스레 마무리하였다.

새침 떼기 처녀 같은 난(蘭)들 이다.

조금만 신경을 놓고 있으면 떡잎이 될 조짐을 보이기도 하고, 피워둔 꽃잎도 쉬 떨어뜨려버린다.

자주 들여다보고 마음속으로 '사랑하다. 아가씨들아'라고 이야기해주면 금새 난향(蘭香)이 달라진다.

달력에 물 준 날짜에 동그라미 표시를 해 둔다.

다음 물주기를 위해서다.

이젠 이렇게 표시해 두지 않으면 세월의 흐름을 놓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늦은 점심식사를 명절 마무리 음식으로 요리한 잡탕으로 떼우고

작은 상(床) 다리 고장 난 것을 원래 모습과는 다르지만 불편하지 않게 고쳐두고

사용한 연장을 치우기 위해서

양손에 물건을 들고 이층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왼쪽 발바닥에 무언가가 붙어 떼어낼 생각으로 아주 무심코 오른쪽 발등에다가 문질렀다.

이상하게 오른쪽 발등이 불에 데인 것처럼 화끈한 느낌이 들어 내려다 봤더니

왠걸 살이 갈라져 검붉은 피가 마구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상처 부위를 잡고 눌렀으나 워낙 상처가 커서인지 손으로 잡고 있어도 지혈이 되지 않는다.

당황한 아내와 막둥이가 발을 동동 구른다.

명절날 아이들이 깨트린 유리잔 파편이 거실바닥에서 튀어 올라 계단에 떨어져 있었던 모양이다.

한쪽은 둥글게 되어있고 이 부분이 왼발바닥에 붙었던 모양이다.

반대쪽은 날카롭게 깨여져 있었는데 아마 이 부분이 오른쪽 발등을 갈라놓았던것 같다.

119 구급차를 불러야겠다.

전화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떨린다.

구급차가 도착할 때까지의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진다.

실제 소방서가 가까이 있어 도착하기 까지 5분 남짓 밖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생리식염수로 상처를 씻어내고, 꺼즈를 두껍게 댄 다음 압박붕대로 눌러 지혈을 시킨다.

신통하다.

그렇게 붙들고 있어도 지혈이 안 되어 당황했었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지혈을 시키다니, 확실히 전문가가 다른 모양이다.

구급차에 타고 가까이 있는 선린병원 응급실로 들어갔다.

멀쩡한 놈이 앰브랜스를 타고 응급실로 들어가니 좀은 쑥스럽기도 하다.

외과당직의사가 와서는 왜 다쳤냐고 꼬치꼬치 묻는다. 다친 상태 파악하고 치료하면 될 것을 이유를 알려고 한다. 부부싸움이라도 한 걸로 생각하셨나?

인대와 신경의 절단여부를 확인하여야 한다면서 끝이 뾰죽한 굽은 핀셋으로 상처를 들춰내고 안쪽을 이리저리 건드리고 몇 차례나 입이 쫙 벌려지게 고통을 준다.

좀 경력 있는 의사라면 한번에 대번 확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아직 젊은 수련의 과정을 거치는 듯한 의사이니 환자의 고통은 아랑곳 하지 않고 몇 번이나 같은 곳을 들쑤신다.

이빨이 저리도록 깨물면서 고통을 참는다.

아내가 옆에 있으면서 보다가 내 어깨를 너무 꽉 잡아 어깨가 아플 지경이다.

아내를 밖으로 내어 보냈다. 보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정형외과 의사선생님이 다시 봐야합니다'라고 외과의사 퇴장하고, 엑스레이 찍고, 한시간 남짓 기다리면서 주위의 환자들을 본다.

아내의 제자였던 고등학교 1학년생이 오토바이를 타다가 넘어져 바로 옆에서 치료를 받는다.

뼈는 괜찮은 모양이다. 의사가 입원을 권하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해 봐도 뼈가 괜찮고 외상만 있는 상태인데 무슨 입원까지 필요하겠는가 싶다. 학생 아버지가 바로 퇴원을 희망해서 나간다. 그래도 착한 학생인지 나에게 까지 와서 내 상처를 묻는다. '나는 괜찮으니 자네나 빨리 완쾌하도록 해라' 하고 보냈다.

산에 갔다가 뱀에 물려온 환자, 골다공증세가 있는 할머니의 팔뼈 부러진 고통, 병원은 평생을 가지 않아도 좋은 곳이다.

다른 환자 몇을 더 본 정형외과 의사가 또 다시 상처를 들춰내어서 아까번의 외과의사 처럼 인대와 신경을 확인한단다. 죽을 지경이다. 지혈이 안된다 면서 간호사를 불러 종아리 부근을 공기압축으로 지혈 시킨다.

예쁘장한 간호사와 정형외과 의사 사이가 재미있는 사이인 모양이다.

그런 사이는 옆에서 보면 대번 느끼게 된다.

그래도 잘 지혈이 되지 않자 다시 간호사를 부른다.

이번에는 아까 그 예쁘장한 간호사가 아니다. 그런데 이 간호사는 젊은 정형외과 의사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다른 간호사와 친하게 지내니 심통이 나 있는 것 같다.

상처가 아파 주겠는데 젊은 사람들의 사랑하는 관계를 눈치로 잡아 생각해 보면서 속으로 웃어본다. 좋을 때다.


나에게도 입원을 권한다.

'입원해서 정밀하게 검사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상처를 조금 더 찢어서 크게 벌려 확인해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아이구 이 사람아 생사람 잡겠다. 발가락 잘 움직이고, 감촉 좋은데 뭘 입원하냐 더군다나 상처를 더 찢겠다니...' 속으로는 나무라면서도 '그냥 봉합해 주시면 바로 퇴원 하겠습니다' 하고 사양을 했다.

마취하고 봉합을 끝내고 나니 반은 다 나은 기분이다.

아내의 배짱으로 휠체어를 타고 집에 까지 편하게 왔다.

휠체어를 탄 기분은 참으로 이상하다.

재벌들의 휠체어 탄 모습을 신문이나 방송으로 보고 또 얼마 전 외국 신문에 '한국 재벌은 여건만 불리하면 휠체어를 탄다'라는 기사를 읽었던 것도 생각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만 보는 것 같고, (내가 이 병원 앞을 지날 때 훨체어 탄 사람들에게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생각은 잊어버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크게 의식하게 된다.

집에 돌아오니

그간 아들의 사고를 까맣게 잊은 어머니는 붕대를 감은 발을 보고 다시 놀란다.

'아이고 와 이래 다쳤노'

'아니오. 조금 다친 것 인데 혹시 덧날까 싶어 감아 놓았습니다'


별것 아닌 사소한 것으로 이렇게 상처를 입어 119 구급차까지 불러 병원 응급실을 다녀와야 했던 것이 명절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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