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방학은 아마 그동안의 학교생활 중에 가장 바빴던 방학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초반부에는 전교생이 학교에 나와서 보충학습을 하느라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좀 쉴 만한 여유가 생기면 이곳저곳 연수다, 출장이다 하여 하루도 집에서 푹 쉬어본 날이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 불러주는 곳 많고, 할 일 많은 게 행복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퇴임하고 집에 있으면 어느 누가 이렇게 날 불러주고, 또 내가 해야 할 일이 그렇게 있을 것인가.
그 와중에서도 포항지역 교장협의회 주관으로 여수, 순천을 1박2일로 다녀올 수 있었다.
향일암 올라가는 길에는 이렇게 바위의 좁은 틈새를 이용하는 길이 몇 군데 있었다. 자연스럽게 생긴 틈새일가?
아니면 길을 내기 위해 일부러 만든 틈일까?
대구 팔공산에도 중암암(中岩庵, 일명 돌구멍절)이란 곳이 있어 큰 바위 틈새로 난 길을 이용하여 암자를 세워둔 곳이 있는데, 그곳에 비하면 이곳이 규모면에서 월등하다는 생각이 든다.
향일암 미륵전(?) 앞마당에 느티나무 뿌리를 뚫고 올라온 동백나무의 희한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불에 탄 본전을 보수하느라 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화재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충 어느 사람의 소행인지는 짐작하는지 쉬쉬하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날은 여수시청에서 보내준 미모의 여자 문화해설사의 안내로 오동도를 구경하였다.
신혼여행을 제대로 가지 못했던 연유로 결혼 이듬해에 아내와 같이 왔었던 곳이라 그 때의 기억이 새로웠다.
멀리 작은 배 한척이 나가고 있네요.
추웠던 겨울날씨가 그날따라 푸근하게 풀려서 다니기 무척 좋았습니다
오동도에는 황금옻칠을 할 수 있는 황칠나무가 있다고 자랑하네요.
우리나라 남해안 일부에서만 자생하는 귀한 나무랍니다.
여수세계박람회 홍보관에도 들러 설명듣고,
선물도 받아 챙겼다.
여수, 순천, 벌교 쪽으로 가면 돈자랑, 주먹자랑, 인물자랑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그냥 생겨난 게 아니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물산도 풍부하고, 여자들 인물도 보통 이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철새들이 많이 날아온다고 하든데, 우리 일행이 도착한 무렵에는 어디로 날아갔는지 별로 보이질 않았다.
죽 걸어가서 전망대까지 다녀왔으면 좋으련만, 연세 드신 교장님들은 돌아가기를 재촉해서 대충 둘러보고는 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 나오고 말았다.
순천에서 유명한 서대회로 점심식사를 한다. 가자미 같은 고기인데, 약간 다른 모양이다. 이쪽 지방에는 제사상에 반드시 올라가는 귀한 고기라 한다.
우리학교 선생님들과 1박2일의 워크아웃 행사도 잇달아 있었다.
도라산 전망대에서 전방상황을 설명 듣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의 미루나무 사건 때 절단했던 나무 실물도 전시되어 있다.
이 사건이후 공동경비구역이 없어지고 남북으로 경비구역이 나뉘어 졌다.
군사분계선은 이런 팻말이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다.
JSA 브리핑 실에서 판문점에 대한 설명과 견학 시 주의사항을 듣는다. 아무래도 예민한 지역이어서 주의해야 할 사항들이 많았다.
단체로 견학하는 입장에서는 통제에 잘 따라야 한다.
인솔하는 군인들로부터 주위경관과 역사적인 사건, 유래 등을 들을 수 있었다.
판문점내의 회담장에도 들어가 보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 미루나무가 서 있던 자리에 세워진 표지석 등도 둘러보고 나왔다.
쉽게 구경하기 힘든 곳 이었지만 아는 사람의 보증으로 편히 볼 수 있었다.
제3땅굴도 구경한다.
내가 전방 GOP에서 근무할 당시 땅굴이 발견되어 시끄러웠던 기억이 새롭다.
서울 외출나와서 어느 치과병원에 갔더니 아예 운하를 동서로 파 버리는게 어떠냐고 목청을 올리던 의사도 있었다.
정말 아찔한 시간이었다 만약 이런 땅굴을 발견하지 못하고 북한의 의도대로 휴전선 이남에 대거 북한군이 서울로 쳐 들어왔었다면 어쩔뻔 했겠는가?
저녁시간을 이용하여 신학년도 구상을 논의한다.
의견들이 봇물 터지듯이 흘러나온다.
내 나름대로의 복안은 가지고 있었지만, 선생님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해서 취사선택하도록 해야겠다.
영종대교, 인천대교도 지나보고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자장면으로 점심식사를 하면서 일정을 마무리한다.
이제 먼 길을 돌아갈 일만 남았다.
직원들이 이렇게 같이 여행을 하면서 신학년도 구상도 하고, 논의 하면서 마음을 맞추어 나가는 일정이 힘들기도 하지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