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이야기

한해 농사

회형 2009. 12. 21. 09:48

연말이어서일까?

마음이 뒤숭숭하다.

불러대는 데는 많아서 자리는 자꾸 비우게 되고,

내 자리 비움이 어딘가에서 불협화음을 만들어내고 있을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 든다.

학년말이 가까워지면서 스물거리면서 스며드는 불안감은 학년초 예상했었던 목표치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 같은 예감에 기인한 것일까?

일년 농사는 제대로 지어진건가 하는 의문은 자꾸 든다.

내가 지금하고 있는 것이 바른 것인가? 바른길로 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회의(懷疑)도 자꾸 든다.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학생들 학력향상을 위해 전력투구하였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그랬는가?

하는 시늉만 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자신에 대한 의구심도 든다.

왜 이리 마음이 흐트러지고 불안한 마음이 들까?

3학년 학생들의 학력고사 성적은 지난 3월과 비교해 볼 수도 없는 학생 개인의 과목별로 우수, 보통, 기초, 미달이라는 4단계로만 나타나 있어, 학생들과 약속했었던 성적우수자와 향상자에게 시상하겠다던 것은 어쩔 수 없이 취소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어쩌면 이게 더 속 편한지도 모르겠다.

숫자로 나타나는 성적이 공개되어 누가, 어느 학교가, 잘했는니, 못했느니 하며 거론하는 것보다 아예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 없도록 조치한 것이 그 동안 성적이 저조했던 우리학교로서는 더 속 편할는지 모른다.

그래도 일년 농사를 힘들여 지었는데,

그 결과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는데,

같이 노력했던 선생님들과, 열심히 공부했던 우리 아이들과 같이 기뻐해 보고 싶었는데.

아니,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겠지.

성적이 더 떨어져 걱정해야하는 결과가 나타날지도 모르지.

그래도 나쁜 결과가 나타났다면 내년에는 더 좋은 방법을 강구하고 같이 더 노력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을 텐데.

아쉽기도 하다.

이제 내년 전반기를 근무하면 이 학교를 떠나야 한다.

4년간이라는 시간이 근래에 들어서면서부터 지루하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막상 내년을 채우지 못하고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약간은 급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일년 농사가 아니라 4년 농사의 결과가 다른 곳으로부터 평가받기 이전에 내 자신 스스로,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라도 하고 살았는가 하고 반성을 해보아야 할 것 같다.

마음이 뒤숭숭하다.

창 밖으로 내다보는 운제산 봉우리들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기분이다.

가까이 두고 자주 읽던 시집(詩集)을 꺼내 읽어 본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한숨이 새어나온다.

그래, 그래서 시인은 피를 토하면서 시를 쓰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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