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오 개념

회형 2009. 3. 31. 12:30

내 어릴 적 도시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농촌 실상이나 생활을 잘 이해하질 못했었다.

시골로 갈 수 있었던 것은 여름, 겨울 방학 때 외가댁 정도였다.

국민학교에서 배운 자연 교과의 어설픈 지식에 따르면 열매는 반드시 꽃이 피고 난 뒤에 그곳에 열매가 맺는다는 정도였다.

우리가 먹는 쌀의 경우, 논에서 자라는 벼도 꽃이 피어야 열매인 쌀이 달릴 수 있다는 것인데, 내 기억으로는 벼에서 꽃이 피는 것을 본 기억이 없었다는 것이다.

한번은 이종사촌 큰 형님에게 그 의문을 물어보았다.

그 형님은 ‘봄에 논에서 벼꽃이 하얗게 활짝 피면 온 세상이 모두 눈 온 것처럼 하얗게 된단다.’라는 말이 우스개소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데는 오랜 세월이 소요되었다.

봄이 되어 온 마을이 하얗게 되는 모습을 한번 보아야 할텐데 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한번 형성된 오개념은 쉽게 변해지지 않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것과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우리 집 막둥이는 곰탕을 그렇게나 좋아한다.

좀 유명한 곰탕집에 데리고 가면 최고라는 신호를 보낸다.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우면서.

재작년 안동을 거쳐 강원도를 하루 만에 둘러 왔었던 날도 안동대학교를 지나 곰탕 잘 하는 집에 들러 먹었던 곰탕 맛을 아직도 이야기한다.

아마도 그 날이었을 것이다.

곰탕을 무슨 고기로 만드느냐고 묻는다. 그 집 간판에 한우곰탕이라는 글이 커다랗게 붙어있어 모르고 묻는 것 이라고는 생각지 않고, 우스개 소리로 ‘곰 고기로 만들지’ 했더니 순진한 우리 막둥이 그걸 그대로 믿었던 모양이다.

저 친구들과 이야기 도중에 곰탕은 곰 고기로 만든다고 강력히 주장했었던 모양이다.

며칠 후 저녁 식사 중에 곰탕을 곰 고기로 만든다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가 병신 됐다면서 원망을 하는 게 아닌가.

오개념은 이렇게도 형성되는가 보다.


요사이는 오히려 막둥이에게 당하고 산다.

능청스럽게 이야기하는 막둥이를 당하지 못하고 어른이 판판이 넘어간다.

까르르 넘어가면서 제 이야기가 아버지에게 통했다는 것을 기분좋아하는 막둥이 아들을 나무라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버지 오백원짜리 동전에 그려진 거북선 등판에 뾰죽한 침이 있을까요?’

‘글세 있겠지’ 했더니, ‘오백원짜리 동전에 거북선이 어디 있어요.’ 한다. 또 보기 좋게 한번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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