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후배를 먼저 보내고

회형 2008. 2. 12. 14:29

설날 아침에는 아내와 동갑내기인 같은 레지오 단원의 선종 소식을 들었다.

경제적 능력이 필요치 않은 부잣집 아들과 결혼하였지만

이내 경제적인 어려움을 내내 짊어지고 살았었고

수녀원 수련을 6-7년 정도 하였지만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세속생활로 되돌아 왔던 사람.

몇 종류의 암을 몸에 달고 살았지만 웃음 진 모습만 기억되는 사람.

딸 둘을 잘 키워 서울대학교 졸업한 첫째는 출가 시켰지만 둘째는 아직 교편생활을 하는 미혼

장례미사 중에 간간히 들려오는 울음소리가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화장장까지 아내를 태워주고 돌아왔다.

우리집 막둥이는 '엄마, 아버지 돌아가셔도 난 울지 않을거야'란다.

막둥이는 눈물상주라는 것을 아직은 잘 모르는 모양이다.

 

그렇게 잘 자던 잠이,

조금은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 누가 깨우지만 않으면 해가 중천에 떠 오를때 까지 잘 자던 잠이 ,

새벽녘이면 눈이 말뚱해 진다.

아내가 잠 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것을 나는 잘 느끼지 못했었는데

내가 뒤척이는것은 대번 알아챈다.

그동안 내가 너무 미련스러웠었나

온갖 생각들을 한다.

이런 시간에 하는 생각은 드라마 작가처럼 일이 잘 풀리게 생각이 꼬리를 문다.

내일 아침에 잊지 않도록

하나...

둘...

셋...

넷...  네가지 해결방안을 강구했었다. 잊지말아야지.

골목에 켜져있는 방범등 때문에 방이 너무 밝아 잠이 설게 된다면서 불을 끄고 들어온다.

한결 낫다.

얼마지 않아 잠이 들었다.

 

어제 저녁에 생각했던 내용을 잊지않기 위해서 수첩에 빠르게 메모를 한다.

네가지였지.

오늘은  모두를 잘 기억해 내었다.

컴퓨터를 켜고 메일을 확인한다.

이상한 메일이 있어 열어본다.

아!

이게 무슨 일인가.

며칠전에 같이 먼길을 같이 갔다왔었고,

그 날 저녁 같이 늦게까지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같이 등산가자라고 약속했었던

건장하고, 씩씩하며, 승진을 눈 앞에 두고 있던 후배가 근무 중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순직했단다.

눈 앞이 하애진다.

이럴 수가 있나?

아무리 인명은 재천이라 하지만 이럴 수는 없다.

아들 둘을 모두 잘 키워 은근히 자랑하던 모습이 바로 옆에 있는것 같은데.

아!

지금 앉아있는 내가 생시의 나 인가?

아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후배야!

승진을 위해 그렇게 어렵게 살아왔던 후배야!

이제 눈 앞에 승진을 앞두고 그렇게 허망하게 가도 되는 것이냐.

 

맥이 풀린다.

먼저 간 아내 동갑내기 레지오 단원이여!

그 대는 평소 어려움을 그렇게 안고 살았으니 분명 하느님 품에 안겨 계시리라 믿습니다.

 

꿈 같이 떠나 버린 후배야!

잠깐의 시간이었겠지만 임종의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느냐.

아내와 아이들 모두 두고 떠나는 순간이 얼마나 힘들었겠느냐.

우리도 이렇게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앞에 두고 망연자실해 있다.

 

좋은 곳으로 가거라.

어렵고, 힘들게 살았던 만큼 받아야 할 몫도 있을게다.

너의 잔영을 안고 마음 깊게 기도하마

좋은 곳으로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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