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교사에게 드리는 말
언제였던가, 화학과 초임교사들, 첫 발령받아서 새 임지에 부임하기 전, 같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발령받아 학교가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대접을 받게 될 것 입니다.
학생들은 ‘선생님!’하면서 따르게 될 것이고, 학부형들이나 지역 주민들도 선생님 대우를 특별하게 할 것 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지내게 되면 그 대접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게 되고 내가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있는 특별한 자격을 가진 사람인 것처럼 무의식중에 자리 잡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여러분들이 학교를 둘러 싼 여러 사람들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은 여러분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귀한 학생을 지도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학생이 없는 선생이 어디 있으며, 백성이 없는 임금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자신이 특별하고 뛰어나서 주위로부터 특별대우를 받는다는 것이 아님을 항상 인식하고 생활한다면 여러분의 의식 중심에 학생이 자리하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학생들로부터 대접받고 우대 받아야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교육적인 차원에서 학생들이 선생님을 존대해야 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학생들을 우선 생각하고 어떤 것이 학생들을 위하는 교육적인 방법인가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학생생활지도편의주의로 흐르지 마십시오.
우리가 행정기관의 잘못을 이야기할 때 흔히 행정편의주의라는 말들을 자주 사용하지요.
우리는 학생생활지도편의주의로 학생지도에 임하게 되지는 않을는지요?
학생들이 교사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교무실 복도에 학생들을 끓어 앉게 하여 벌을 주지는 않겠습니까?
이 때 벌 받는 학생들의 마음을 한번 헤아려 볼 수 있겠습니까?
벌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더 큰 반발심을 불러 오지는 않을까요?
다른 많은 학생들이 보는 곳에서 받는 벌이 학생들의 마음에는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요?
학생들을 벌주기 전에 내가 학생지도를 정말 전심을 다하여 했는가를 한번 되새겨 생각해 보십시오.
한 두번 주의를 주어서 학생들의 잘못된 습관이 고쳐진다면 아무나 교육을 할 수 있겠지요.
열성을 다해 지도했지만 개선되지 않는 학생들을 볼 때는 포기하고 싶기도 하겠지요. 그렇다고 학생지도를 포기한다면 누가 그 학생을 선도할 수 있겠습니까.
교육이란 것이 그렇게 한두번 말로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번 더!’하면서 시도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고 바쁘다고, 힘 드는 일이라고,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학생들과의 상담을 소홀히 하지는 않을는지요.
학생들의 복지, 편의를 생각하기보다 운영방법의 어려움을 생각하여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 나약한 교사가 되지 마십시오.
귀한 대접을 받고 자라나는 학생들은 귀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라고 생각이 들는지 몰라도 이 아이들은 불과 몇 년이 아니면 어른이 되어 여러분 앞에 나타나 지난 시간에서 여러분들이 학생들에게 했었던 잘잘못을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제 결혼식에 주례를 맡아 주십시오.’라는 제자들이 많이 나타나야 합니다.
학생과 많은 시간을 이야기하고 학생의 어려움을 이해하며 같이 마음 아파할 수 있는 교사 , 학생들을 마음속 깊이 사랑할 수 있는, 교사로서의 진정한 용기를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십년 후, 삼십년 후 여러분들의 교직생활은 성공한 모습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주장했던 좋은 교사의 모습에 내 자신을 투영시켜 봅니다.
내 자신은 그렇게 잘 하지 못하면서, 남에게 이야기하고 시키는 것은 쉽게 할 수 있어 이래저래 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