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칸사스
내가 사는 집으로 이사 온지가 20년이 넘었다.
이사 올 때부터 대문 옆 화단에 거구를 가지고 서있었던 피라칸사스 둥치 중간부분을 잘라내게 되었다.
어떤 것인지 눈에 뜨이지도 않는 벌레가 이 나무의 껍질을 파먹은 결과 윗부분이 이번 봄에 말라죽게 된 것이다.
몇 해 전부터 약간씩 줄기가 파 먹혀 들어가는 것을 보았지만, 이 결과로 나무가 죽게 될지는 예상을 못했던 것이다.
봄이면 너무 왕성하게 새 잎과 가지를 돋아내서 매년 강한 전지작업을 해주어야 했던 것이 이번 봄에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가지를 꺾어 보았더니 벌써 가지가 말라 있었다.
톱을 들고 작은 새 가지가 돋은 윗부분부터 베어나가기 시작했다.
별 희한한 벌레도 다 있다.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눈에 뜨이지도 않는 것이 언제 저렇게 줄기 껍질을 파먹어 버렸을까?
저렇게 되도록 방치해 둔 자신이 미련스럽다 못해 나무에 미안스러울 정도다.
옆집에 사시는 노인 한 분이 이 나무를 볼 때마다 명품이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봄이면 좁쌀 같은 크기의 작고 하얀 꽃들을 소복히 피우고, 초가을로 들어서면 선홍색의 열매를 달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던 자랑스러웠던 나무를 이렇게 베어내게 된 것이다.
이제 남아있는 밑둥치나마 잘 가꾸어 살려내어야 한다.
포항지역에서 좀체 구하기 힘든 붉은 진흙을 일부러 먼 곳까지 가서 캐어왔다.
물에 이긴 진흙을 줄기에 고르게 바르고 붕대로 잘 감아두니 옆에 있던 아내가 미이라를 보는 것 같다하여 붕대위에 다시 진흙을 발라 마무리를 했다.
효과가 있으려나?
새 가지가 돋아나온 것을 잘 키우면 몇 년 걸리지 않고 다시 자기 풍채를 되찾으리라 생각된다. 워낙 성장세가 좋은 놈이어서.
흙일을 맨손으로 했더니 손톱 밑과 사이에 흙이 잔뜩 끼어져 있다.
못쓰는 칫솔에 비누칠을 해서 손톱을 청소하면서 매일 흙일하면서 사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