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목정 성지(聖地)
연휴의 마지막 일요일,
방학이라지만 학교의 방과후학교 및 출장 관계로 쉽게 쉴 수 있는 시간을 낼 수 없어 일요일 오후를 가족과 함께 보내기로 하였다.
한우고기로 유명한 경주 산내마을을 찾아가 일단은 배를 채우자.
고기 좋아라하는 막둥이는 살판이 났다.
평소에도 자주 많이 먹는 편이지만, 오늘따라 먹는 양이 보통을 넘어서는 것 같다.
굽기 바쁘다.
콜레스테롤 걱정하던 아내도 고기 좋아하는 식성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가 보다.
굽기에 바쁜 내 입에 상치 쌈과 함께 고기를 넣어주는 아내의 손도 바쁘다.
집을 나설 때는 점심 먹고 막연히 경주 어딘가 유적지를 찾아보자 했었는데, 산내까지 오고 보니 가까이에 진목정이라는 성지가 있음을 생각하고 그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십여 년 전에 찾아왔었던 기억을 되살려 찾아간 길은 정확했었다.
그 당시에는 범굴을 찾아낸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포항제철 교우회에서 무너진 굴속의 바위를 빼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경주 성건성당에서 피정 건물을 건축 중에 있었다.
그 동안 많이 다듬어진 것 같다.
오르막길에 길이 무너지지 않게 큰 통나무로 계단도 설치하고 산길을 새로 내면서 안전을 위해 경사진 면에 밧줄로 난간처럼 해두었고, 십자가의 길 14처도 간격을 맞추어 설치가 되어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범굴을 오르는 길에 마련된 십자가의 길을 정성스레 바친다.
막둥이는 자기 십자가까지 지고 같이 기도를 바친다.
내려오는 길에는 아버지가 대신 들어준다 해도, 땀을 흘리면서도 자기의 것을 계속 지고 가겠다고 한다.
착한 아이다.
하느님 은총 가득히 내려주시기를 빌어본다.
겨울이라 찾는 사람 없고, 잎 넓은 낙엽들이 수북이 쌓인 산길에서 십자가의 길은 올 한해를 마무리하는 기도로 적절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성탄시기에 하는 십자가의 길’이라는 막둥이의 지적에 ‘그래도 그렇다’는 궁색한 경상도식 변명을 해 본다.
교원공제회원에게 할인혜택이 주어지는 경주교육문화회관의 시설 좋은 스파월드에 가서 흘린 땀을 깨끗이 씻고, 북군동 한식마을에서 정갈한 정식으로 저녁식사를 한다.
오늘 참 멋진 하루를 보내었다고 식구들 모두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