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수컷은 껍데기
회형
2009. 9. 14. 11:12
떡순이가 강아지를 7마리나 키우고 있는 상태에서 바로 옆에 있는 수컷 짱구가 내심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짱구가 조금이라도 강아지 쪽을 보고 있으면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릉 거린다.
아무리 수컷이라도 서열이 아직도 떡순이 보다 낮은 짱구인지라 대부분은 떡순이의 눈을 피해 버리지만 간혹은 한번씩 맞붙을 때가 있다.
콧잔등이 성할 날 없다.
앞으로 강아지가 조금씩 더 커지고 활동범위가 넓어지게 되면 큰놈 두 마리의 격돌이 더 잦아질 것 같은 생각에 짱구의 자리를 마당 뒤쪽으로 옮겨 버렸다.
새로 정해진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주위를 온통 더럽혀놓았다.
뿐만 아니라 두어 계단을 올라가 높은 자리에서 떡순이 쪽과 자기 집을 계속 애처롭게 쳐다보고 있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수컷은 껍데기라는 말이 생각난다.
어느 지역의 방언인지 남자 혹은 아버지를 껍데기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자기와 같은 유전자를 남기고 퍼트리기 위해 죽을힘을 들여 활동하지만 결국에는 껍데기로 남는다는 공허한 이야기다.
혼자 중얼거리는 말을 아내가 들은 모양이다.
짐승은 그렇지만 그 뒤에 웬 그런 말이 따라 붙느냐고 힐난하듯이 말한다.
『아직은』
하고 생각한다만, 요즘 요상스런 유머에서도 남자들은 껍데기라는 류의 이야기들이 널리 유행되는 것을 보면 전혀 터무니없는 생각만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