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차숙자(車宿者)
매일 퇴근 후 수도산으로 산책하는 시간을 가지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제때에 시간을 내지 못해 아예 밤 시간을 이용할 때가 있다.
밤에는 산길을 걷기가 어려워 해수욕장, 여객선터미널 방파제로 나간다.
몇 차례의 위험한 횡단보도를 건너야하고, 좋지 못한 상태의 보도블럭 길이 여러 군데 있어 좋아하는 길은 아니지만 꿩 대신 닭이라는 기분으로 나간다.
포항여객선터미널을 지나 방파제로 접어드는 부근에 특이한 차 한대가 매번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까이 가면 그 차에서 흘러나오는 큰 음악소리부터 들을 수 있다.
서울 번호판을 단 2톤 트럭.
적재함을 방으로 꾸며 놓고 가스랜턴 두세 개를 켜두어 환하게 내부를 밝히고 신문이나 잡지를 읽고 있는 늙구스레한 초로의 남자가 주인이다.
엄청난 크기의 녹음기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흘러간 팝송이나 포크송 혹은 조용필이나 이미자의 노래가 나온다.
조금 이른 시간에 보면 가스버너에 냄비를 올려두고 취사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그 부근에서 밤 새워 공사하는 사람으로 생각했었다.
허지만 갈 때마다 그곳에 서 있는 차, 들려오는 음악, 그곳에서 밤을 보내리라고 생각되는 여러 가지 것들로 노숙자가 아니라 차숙자(車宿者) 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아마 낮에는 시내에서 장사를 하던지, 작업장에서 일을 하다가 밤이면 이곳에서 잠을 청하는가 보다.
부근에 옥외 화장실이 있어 급수, 세면, 배설 등의 일상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도 있어 차숙자(車宿者)로서는 적합한 장소인 것 같다.
무슨 깊은 사연이 있는 사람이겠지.
저 나이에 가족이 없을 리는 없겠고, IMF 후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일까?
아님 가정적으로 문제가 있어 혼자 저렇게 생활하고 있을까?
지금이야 계절적으로 어려움이 없겠지만 찬 겨울엔 어떻게 이겨낼까?
바닷가 방파제 근처여서 여름에는 큰 어려움이 없겠다.
어떤 어려움을 안고 사는지는 모르지만 빨리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따뜻한 가족들과 같이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