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형 2008. 4. 25. 09:14
 

거의 매일 오후에 걷는 수도산 산책길 제일 마지막 코스에는 둘레 약 150m의 평편한 공간이 있다.

중간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정자와 몇 가지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고, 이리 저리 구불구불하게 최대한 바깥쪽으로 난 길이 있다.

일부러 만들어진 길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니면서 자연스레 만들어진 소로이다. 넓게 트인 공간도 있고, 나무가 우거진 숲속 길도 있다.

그 길 중 산새의 이상한 노래 소리가 가까이 들리는 곳이 있다.

그 전부터 신나게 노래를 불렀겠지만, 온갖 잡다한 생각에 빠져 있었던 탓인지 내 귀에 들려지지 않던 산새 노래 소리가 어느 날부터 귀에 들려온다.

‘삑’과 ‘짹’소리의 중간쯤 되는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어떤 소리든 표시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훌륭한 한글로도 정확한 소리를 표시하기 어렵다.

허긴 자연의 소리를 정확하게 담으려는 게 처음부터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삑√ 삐익∿ 삐--- 삐르르ꀇ ’

거의 같은 음률이다.

며칠간이나 계속 같은 자리 부근에서 같은 음율을 듣는다.

아렛께 부터는 노래를 휘파람으로 따라 불러본다.

오래간만에 불어보는 휘파람은 소리가 제대로 나질 않고 바람 새는 소리만 난다.

생각해 보니 휘파람 불어본지가 정말 오래간만이다.

휘파람 불 일이 언제 있었던가?

나이가 들면서 잊어버린 것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서 휘파람이 한부분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본다.

연습을 계속한다.

옛날 불던 실력이 어디가랴.

놈이 ‘삑√ 삐익∿ 삐--- 삐르르ꀇ ’하고 부르면

나도  ‘휘--, 휘---, 휘르르’하고 따라 불어본다.

어!

이 놈이 이젠 더 큰 소리로 부르네.

내가 경쟁상대라도 되는 듯 이전보다 확실히 큰 소리로 부른다.

몇 일간 주거니 받거니 한다.

이 놈의 모습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숲 속에 숨어서 노래를 부르니 어떤 놈인지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자리 가까운 곳 잔디밭에 제법 덩치가 큰 새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까치나 비둘기보다는 작지만, 부리가 길고 뾰죽한데 모양은 별로 볼품이 없다.

깃털이 칙칙한 어두운 색이고 머리 부분만 약간의 색깔이 보인다.

금새 날아가 버려 자세한 모양을 볼 수는 없었고, 또 이 놈이 그 노래의 주인공인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모양을 드러내고 있는 동안은 노래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그 주인공이리라 추측할 뿐이지.

몇 일간 계속 노래와 휘파람으로 주고받기를 계속 했다.

어떤 땐 내 휘파람 소리가 나면 음정과 박자를 완전히 바꿔 다른 노래로 부르기도 한다.

‘날 따라 해봐라’ 하는 식이다.

노래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도 휘파람을 불면 따라 부르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다가도 응답을 해 주지 않고 있으면 그만 소리가 시들해지고 그만 두기도 한다.

‘이 놈이 나 하고 제법 통하는군’ 흐뭇해하면서 신나게 휘파람을 부는데 ‘푸르르’ 소리를 내면서 건너편 산으로 날아가 버린다.

이제껏 생각은 완전히 나 혼자만의 상상이었군. 저 새는 내 휘파람 소리와 전혀 관계없이 제 나름대로의 노래였는데, 나 혼자서 이런저런 해석을 갖다 붙인 것이었구나.

세상에는 이렇게 자기 혼자 나름대로 온갖 해석, 상상을 하면서 별 관계없는 것에다 의미를 부여하고 있구나.